한국의 병역거부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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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지
 
한국에서의 병역거부는 아주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여호와의 증인들을 중심으로 50년이 훨씬 넘는 기간동안 병역거부자들이 감옥에 수감되어 있던 시간만 합쳐도 1만 여 시간이 훌쩍 넘는다. 독재정권 하에서 구타, 고문 등을 견디며 누군가는 숨을 거두었고, 누군가는 7년이 넘는 시간을 감옥에서 보내야만 했다. 한국에서 ‘병역거부’가 일반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2001년 초의 일이다. 그 후 사회적으로 많은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키며 한국사회에서의 병역거부 문제는 큰 이슈가 되었다. 물론 처음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비난과 질타로 50년이 넘는 시간동안 겪어왔던 고통보다도 더 큰 심리적 압박감을 느껴야 했다.[1]

하지만 병역거부문제가 사회적으로 공론화된지 얼마 되지 않아 눈에 띄는 사회적 변화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2004년 남부지방법원에서 병역거부자들에게 무죄선고를 하였다. 무죄선고를 계기로 행정기관에서도 더 이상 병역거부 문제를 외면할 수 없게 되었다. 또한 사회적 논의도 활성화 되어 병역거부 문제에 대해 이해하는 사람들도 점점 늘어가게 되었다. 지방법원의 무죄선고로 대법원과 헌법재판소 또한 병역거부 관련 법안에 대해 판단을 내릴 수밖에 없게 되었다.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에서는 법적 근거로 병역거부를 유죄로 인정할 수밖에 없지만 입법부에서 나서서 병역거부자들을 구제할 수 있는 법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판결을 내렸다. [2]

다양한 병역거부자들의 출현

병역거부자들을 위한 대체복무 법안 마련 논의가 계속 진행되는 가운데 병역거부자들은 끊임없이 생겨났다. 눈여겨볼만한 지점은 2000년대 초반의 병역거부자들이 한국사회의 군사주의에 대해 심각한 문제제기를 했다면, 그 이후로 병역거부 이유가 점점 다양해진 부분이다. 일방적이고 획일적인 국가제도에 대한 고민, 동성애자와 군대의 문제에 대한 고민들이 시작되기도 하였고, 부당한 명령에 대한 불복종 등 단순히 군사주의를 넘어서 민주주의적 가치들이 다양하게 함축되었다.
이런 병역거부에 대한 다양한 고민들은 그동안 함께 하지 못했던 많은 사람들과 연대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도 하였다. ‘동성애와 군대’라는 주제로 Q&A(Queer & Army)라는 소모임이 구성되었다. 또한 2008년 촛불집회[3] 과정에서 진압에 나섰던 전경 이길준의 병역거부로 병역거부문제에 대해 반대했던 혹은 무관심했던 많은 시민들과 함께 할 수 있었다. 진압의 주체였던 그가 부당한 명령에 따르지 않고, 저항의 주체로 넘어서기까지 혼자 감당해내야 했을 힘겨운 고통과 고민의 시간에 많은 사람들은 마음의 울림을 느꼈다.

기쁨의 순간, 하지만 다시 원점으로

2004년 무죄판결에 이어 2005년에는 국가인권위원회가 대체복무제 시행을 권고하였다. 2006년 유엔자유권규약위원회에서도 B규약 이행 여부에 관한 한국 정부의 보고서 검토 후 병역거부 문제와 관련하여 병역거부자의 권리를 인정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하고 관련 법률을 제정할 것을 한국 정부에 재차 권고하였다. 사회적 인식의 변화와 더불어 2007년 9월 한국정부는 병역거부자들에 대한 대체복무제도를 도입, 추진하겠다고 발표하였다. 감옥수감생활과 사회적 비난 속에서 꿋꿋하게 버티며 지나온 병역거부운동이 드디어 제도적 성과를 만들어낸 순간이었다.
하지만 대체복무제도는 정권교체와 함께 다른 사회현안들과 마찬가지로 원점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2008년 12월 국방부에서는 빠르게는 2009년 1월부터 시행키로 했던 병역거부자들에 대한 대체복무제 시행 계획을 ‘없던 일’로 하겠다고 발표하였다. 국방부 관계자는 “개인이 지닌 신념의 자유를 존중하고 소수자의 인권을 보호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국민 대다수가 공감하지 않는다면 의미가 없다”면서 “여기에 대체복무가 병역기피 수단으로 악용될 소지가 있는 점도 감안됐다”고 결정 번복을 설명했다. [4]

그래도 병역거부는 계속 된다.

10여 년이 되어가는 병역거부운동의 가장 큰 성과는 물론 병역거부에 대한 사회적 거부반응이 많이 사라지게 된 것이다. 더불어 병역거부운동은 단순히 대체복무 허용 문제를 넘어서서 한국사회에 견고하게 자리잡고 있던 군사주의와 권위주의에 흠집을 내고, 새로운 가능성들을 모색하는데 기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국방부의 대체복무 인정 번복은 어쩌면 그들의 두려움을 반증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사람이 가진 신념의 다양성을 인정한다는 것은 권력의 일방성과 폭력성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된다. 국방부는 병역거부자들을 겁이 많아 도망치는 ‘기피자’로 치부하며 병역거부를 인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국가의 일방성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내일도 자신의 신념을 걸고 감옥을 향하는 사람들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는다.

주석

[1] 한국사회에서 병역거부운동 초반의 내용은 http://www.wri-irg.org/pubs/br59-en.htm (브로큰라이플59호, 2003년 한국편, 영문판)에서 자세히 보실 수 있습니다.

[2] 병역거부 관련 기관, 결정,경과는 전쟁저항자 인터내셔널의 세계 병역거부권 보고서 한국편을 통해 자세히 볼 수 있습니다. http://wri-irg.org/programmes/world_survey/reports/Korea%2C%20South

[3]2008년 한국 정부는 국민의 여론을 전혀 수렴하지 않은 채 미국산 소고기 협상을 체결하였다. 이에 불만을 가진 시민들이 몇 개월에 걸쳐 매일저녁 길거리에 나와 촛불집회를 진행하였다. 그 과정에서 국가폭력의 실상에 대해 많은 시민들이 공분한 계기가 있었고, 비폭력에 대한 논쟁이 진행되기도 하였다. 한국에서는 자발적 대중의 집단지성과 인터넷을 통한 빠른 결집력 등으로 한국사회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기회였다고 보고 있다.

[4]관련 내용은 http://www.wri-irg.org/node/6309에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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