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ea, Sou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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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민

한국의 운동사회 속에서 ‘비폭력’이라는 개념이 쓰이기 시작한 것은 오래되지 않았다. 여전히도 ‘비폭력’이라는 말에 많은 사람들이 거부감을 느끼는 것도 사실이다. 유약하고 수동적인 운동이라는 생각을 많이 하고 있다. 이러한 생각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한국사회의 운동역사가 가지는 특수성이기도 하다.

한국은 일제식민지시대와 한국전쟁을 겪은 이후로 30여 년간 군부독재정권이 유지되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사람들의 민주주의와 자유에 대한 열망은 시간이 갈수록 강해졌으며 저항세력도 자연스레 늘어나게 되었다. 하지만 군부독재정권들의 폭력적 억압은 많은 사람들에게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이 되었다. 점점 더 강해지는 국가폭력에 대항하기 위해서 많은 민중들이 ‘저항폭력’이라는 방식을 선택하게 되었다. 시민들이 무장을 하고 국가폭력에 직접적으로 맞서게 된 것이다. 

여전히도 한국에서는 경찰들의 폭력이 끊이지 않고 있으며 경찰폭력에 의해 끊임없이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고 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저항폭력’의 힘을 믿고 있으며 그 외에는 방법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폭력을 전면 부정하는 ‘비폭력’은 여전히도 받아들이기 힘든 운동방식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폭력’적인 운동방식은 ‘평화’, ‘비폭력’이 가지는 특성대로 아주 천천히 하지만 꾸준히 한국운동사회 속으로 스며들고 있다. 이러한 ‘비폭력’운동방식은 그동안 폭력적 운동방식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던 많은 대중들에게 감동을 주고 그 대중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을 발휘할 수 있었다. 이미 1980년대 전방입소 반대투쟁, 군인과 전경들의 양심선언, 1990년대 불심검문 반대투쟁 등 비폭력저항의 방식들이 꾸준히 있어왔지만 단순히 비폭력을 투쟁의 ‘도구’로서가 아니라 삶의 철학으로서 비폭력주의를 받아들이는 평화주의자들이 나타나게 된 것은 2000년대 들어서 병역거부자들의 등장이라 할 수 있다. 병역거부운동은 뼛속까지 국가화 되고 군사화 된 한국사회에서 양심적 시민이라면 양심에 거리끼는 국가의 명령에 불복종할 권리가 있다는 것을 알려내고 군대, 무기, 전쟁 등에 대해 근본적으로 사유해 볼 것을 인간의 선한 본성에 호소하였다.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은 이러한 병역거부 운동의 호소에 더욱 큰 무게를 실어주었다. 총을 드는 대신 1년 6개월의 감옥행을 기꺼이 감수하는 이들의 모습은 사람들에게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현재 한국의 병역거부 운동은 병역거부를 고민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법률적, 심리적 상담을 제공하고 기자회견, 토론회, 캠페인, 직접행동 등 각종 활동을 통해 병역거부의 의의를 알려내는 활동을 하고 있다. 또 병역거부자들의 수감 전후를 지속적으로 돌보는 것을 주요한 임무로 삼고 있다. 병역거부는 병역을 거부하는 순간 개인이 감당해야 할 짐이 너무 크고 또 이들의 숫자가 사회적으로 매우 소수이기 때문에 이들이 결코 고립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병역거부 운동의 확산과 함께 이러한 비폭력평화주의에 동조하는 그룹들이 속속 등장하게 되었고 최근의 평택 미군기지 확장 반대투쟁에서 기존의 전통적 투쟁방식과는 사뭇 다른 투쟁을 만들어가는 새로운 세력을 형성하게 되었다. 이들은 평택에서 ‘평화마을 만들기’ 운동을 전개하며 정부와의 협상 끝에 비워진 집들과 마을을 도서관, 찻집, 게스트하우스로 꾸미고 문화예술인들의 주도 하에 마을 전체를 각종 설치물과 벽화가 가득한 평화촌으로 가꿔나가기 시작했다. 또 올해만 해도 몇 차례 진행된 정부의 강제철거에 맨몸으로 마을 입구를 봉쇄하고 포크레인을 막아서는 등 비폭력적 투쟁을 전개하였다. 비록 주류 미디어에서는 이러한 투쟁에 대해 침묵했지만 진보적 매체를 타고 평택의 투쟁은 많은 시민들에게 알려졌고 동조를 이끌어내었다.

아직까지는 이들 운동에 비폭력주의가 중심적 철학으로 자리 잡고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아직까지 병역거부 운동에서는 이러한 평화주의자들이 주류의 흐름을 형성하고는 있지만 2003년 이라크 파병에 반대하며 병역거부를 선언했던 군인 강철민 씨 투쟁의 경우 농성 중 파병반대 운동을 이끌고 있던 운동집단과의 활동방식의 차이에 따른 마찰이 있기도 했고 학생운동 그룹에서 대거 예비병역거부를 선언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기기도 하였다. 모두 병역거부 운동을 다른 운동의 목적(파병반대)을 위해 하나의 수단이나 이벤트쯤으로 치부했기 때문에 생긴 마찰이었다. 또 평택투쟁의 경우 비폭력적 방식에 의한 운동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으나 아직은 소수이고 평택 투쟁 전반을 이끌어간다 기 보다는 범대위를 비롯한 지도부와 따로 또 같이 활동하는 전술을 채택하고 있다.

우리 활동에 어떻게 인터넷을 활용할 것인가

정욱식(평화네트워크 대표)*



지정학적으로 동북아시아를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지리적으로 동북아시아에는 남북한과 일본, 몽골이 있고, 중국 영토의 상당 부분과 러시아 영토의 일부분도 포함된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 ‘사실상의 국가’인 대만도 지 학적으로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또한 역외 국가이면서도 지정학적으로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해온 미국도 떼어놓고 생각할 수는 없다. 


동북아의 지정학에서 한반도는 각별한 위치를 차지한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구한말의 청일전쟁과 러일전쟁, 일본의 한반도 식민지화, 한반도의 분단, 한국전쟁과 정전체제를 거치면서 한반도의 지정학적 민감성은 대단히 강해졌다. 일본과 미국 등 해양세력이 팽창하면 대륙세력인 중국과 러시아는 한반도를 해양세력의 확장을 저 할 완충지대로 삼으려 했다. 반면 대륙세력이 팽창하면 미국과 일본 내에선 한반도가 일본을 향해 뻗친 대륙의 칼이 될 것으로 우려하곤 했다. 한반도의 분단과 전쟁, 그리고 정전은 이러한 동북아 지정학의 비극적인 산물 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그 비극은 그 끝을 알 수 없는 기나긴 현재진행형이 되고 있다. 

한국의 병역거부자들은 유엔의 인권감시기구들을 활용하는 데에 있어서 그동안 매우 성공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작 한국에서는 아직 병역거부권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특히나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모임은 구 인권이사회(현재 인권위원회로 승격)나 자유권규약위원회에 여러 차례에 걸쳐 한국의 병역거부권에 관한 리포트(전쟁저항자 인터내셔널과 함께 공동작성한 보고서도 있음, /node/6240 참조)를 제출한 바 있다. 2006년, 민변의 노력은 결실을 보았다. 자유권규약위원회가 ‘최종견해’를 통해 한국 정부는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의 권리를 인정하고 이들이 군복무를 면제받을 수 있는 모든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을 권고한 것이다.

1. 배경 및 개괄

주한미군은 1950년부터 한국에 주둔을 해왔다. 역사적으로 보면 주한미군의 주 역할은 북한의 남침 위협을 억제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미국의 ‘해외주둔미군재배치계획’이 변화하면서 기존에 대북 전쟁억지를 목적으로 주둔하던 주한미군이 최근 재편을 통해 동북아시아에서의 지역군, 신속기동군으로 변하고 있다.

주한미군 기지의 재배치는 2000년 미국의 요구에 의해 협상이 시작되었다. 미국은 주한미군을 효율적으로 운영하기를 원했고, 방치된 육군 훈련장과 기지들을 통합하기로 하였으며, 공군 기지의 확장과 미국 해병대를 위한 전용 훈련장을 확보하려고 했다. 이에 2002년 한국과 미국은 연합토지관리계획 협정을 체결하였다.

한국의 징병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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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엄격한 징병제를 유지하고 있다. 징병제 등록은 18살이 되는 해에 모든 남성들에게 자동적으로 이루어지며, 19살에는 신체검사를 받게 된다. 군대 입영의 의무는 31살이 될 때까지 유효하며 징병 기피자의 경우에는 그 의무가 36살까지 지속된다.

병역은 2년 간 지속된다. 또한 많은 수의 징병자들(연간 삼십에서 삼십오만의 징병자들 중 이십만명 정도)은 병역 의무를 행정 혹은 기타 업무로 대신하며 4주 간의 군사훈련만을 거치게 된다. 그들의 경우 병역은 26개월간 지속된다. 어떠한 방식으로 병역 의무를 이행할 지는 신체검사 결과와 군의 필요에 따라 결정되어진다.

군을 제대하고 난 후에도 징병자들은 8년 간 160시간의 군사 훈련을 받을 의무를 지게 된다.

68 만명의 한국군 병사들 중에서 75퍼센트가 징병자들이며 나머지 25퍼센트는 전문직 군인들로 이루어진 사관 및 장교들로 구성된다. ‘국방 개혁 2020’ 계획에 따르면 한국은 2020년까지 전문직 군인들의 비율을 40퍼센트까지 증가시킬 계획을 가지고 있다.

편집자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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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부러진 총>에서는 한국 병역거부자들의 상황에 초점을 맞추었다. 전쟁저항자 인터내셔널에서 한국 상황에 초점을 맞추어 소식지를 낸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마지막으로 한국 관련 소식을 내보낸 것은 지난 2003년 평화수감자의 날을 맞이했을 때였다. 그 당시 한국에는 약 750명의 병역거부자들이 감옥 안에 있었다.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 실현과 대체복무제도 개선을 위한 연대회의’(이하 연대회의)의 홈페이지에 따르면 현재 수감된 한국 병역거부자들의 숫자는 400명 정도로 예전보다 줄어든 숫자인데, 이와는 무관하게 병역거부자들이 맞닥뜨려야 하는 현실은 예전과 비교해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이런 맥락 속에서 전쟁저항자 인터내셔널과 연대회의는 2009년 5월 15일 세계 병역거부자의 날 행사의 초점을 한국 상황에 맞추기로 결정을 하였다.

오리

일본 식민지배 35년, 해방되자마자 시작된 미·소 강대국의 조선분할통치, 전쟁, 분단, 군부독재정권의 등장과 레드컴플렉스, 그리고 최근 금강산 관광객 피격사건과 남북 간 군사적 대결완화를 위한 합의들이 사실상 무효화됨으로서 고조되고 있는 군사적 충돌의 가능성까지 한국의 군사주의를 짧은 지면 안에 정리한다는 것은 불가능할 것입니다. 그리 길지 않은 한국 현대사의 과거들이 아직도 채 정리되지 못한 채 사회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고 있으니까요. 물론 한국 사회에 민주화가 진척되고 북한과의 체제경쟁이 사실상 끝난 지금 과거와 같은 반공이데올로기는 많이 약해진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청산되지 못한 과거는 현재와 만나 또 다른 세련된 군사주의 괴물을 만들어내고 교묘하게 사회 곳곳에 둥지를 틀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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