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national Conscientious Objection 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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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재성

대부분의 병역거부자들이 그렇겠지만, 병역거부는 저의 삶에 있어서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여기에서 병역거부란 단순히 신념을 선언하고 감옥에 갇혔던 경험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대체복무제 도입을 위한 활동을 하면서, 많은 병역거부자-활동가들과 교류하면서, 저는 평화운동을 해나가야겠다는 의지를 만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출소 이후 평화연구를 하겠다고 결정한 이후에도 병역거부는 가장 주요한 연구주제가 되고 있습니다. 이 글을 통해서 그러한 저의 경험들과 깨달음을 나누고자 합니다.

여옥

실용주의를 표방한 이명박 정부가 2008년 2월 25일 취임했고, 1년이 지났다.

전 세계적으로 심화되는 경제위기 속에서 국민들은 조금이라도 더 잘 살기 위해 신자유주의 정권을 선택했다. 부자가 되고 싶어서 부자대통령을 뽑은 것이다. 도덕성을 비롯한 다른 모든 문제들은 경제를 살릴 수 있다는 믿음으로 무마되었다. 그렇게 탄생한 정권은 경쟁과 효율을 강조하며 시장만능주의를 외쳤고, 경제를 살린다는 명분 하에 재벌을 위한 정책을 펼치고 있다. 사회는 더 불공평해졌고 서민들은 더욱 가난해졌다.

시민사회의 통제가 가능할 것 같던 국가권력 기구들은 대통령과 집권정당에 의해 달라지기 시작했다. 모든 정부 부처가 대통령의 지시를 처리하기 위한 기관으로 변해가고 있다. 정권에 따라 그동안 쌓아온 사회적인 합의와 민주화운동의 성과마저도 한순간에 뒤집힐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목표달성을 위해서는 절차와 소통을 무시해도 된다는 생각이 어떤 심각한 문제를 낳을 수 있는지를 직접 겪은 일년이었다.

고동주

2005년 10월 11일 나는 병무청에 전화를 걸어, 입대를 하지 않을 것임을 밝혔다. 그 후 19일에 내가 믿는 가톨릭 신앙과 양심으로는 군대가 평화를 가져올 수 없다고 믿기 때문에 병역을 거부한다는 것을 기자회견을 통해 한국 사회에 알렸다.

대학에 들어가서 가톨릭 학생회 활동을 하면서, 나는 단순히 일주일에 한 번 미사에 참례하던 신앙생활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게 됐다. 가톨릭 학생회에서 참으로 예수를 따라 사는 삶이란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의 존재를 알고 그들과 함께 하는 것이라고 배우게 됐고, 앞으로 그렇게 살아야겠다고 다짐을 했다. 그리고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을 예수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판단하고 실천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by 염창근

저는 대학을 다닐 때 학생운동에 참여했고, 그 영향으로 졸업을 하고나서도 국가에 충성하는 군인이 된다는 것이 아주 불편하고 부담스러웠습니다. 국가를 위해 무조건 상부의 명령에 따라야 하는 것도 받아들이기 어려웠지만, 무엇보다 한국 군대가 위계를 만들기 위해 그동안 자행해 왔던 강압적인 폭력 문화가 두려웠습니다. 제 꿈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살상 훈련을 반복해서 해야 한다는 사실 또한 용납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징병제를 실시하는 한국에서는 입대를 피할 방법이 없었고 막연히 입대 시기를 미루기만 하는 방법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었습니다.

이용석

비폭력직접행동이라는 단어가 한국사회에 등장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여전히도 비폭력에 대한 많은 오해들이 있고, 직접행동의 방식도 낯설게 느끼는 사람이 많다. 보수언론이 비폭력=합법의 등식으로 비폭력을 왜곡하기도 하지만, 작년 2008년 촛불집회를 거치면서 비폭력이라는 구호가 이제는 아주 생소하기만한 것은 아니게 되었다.

그동안 비폭력의 개념이 한국사회에서 받아들여지기 힘들었던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혼재되어 있다. 획일적이고 폭력적인 군사주의 문화가 국가주의와 결합되어 사람들의 삶 구석구석에 파고들어 있었다. 20세기 초반 일본제국주의의 식민지 지배의 경험과, 1950년대 한국전쟁의 경험은 국가를 비판과 견제의 대상이기 보다는, 시민들 위에 군림하는 초월적인 존재로 만들어버렸다. 근대국가를 경험해보기도 전에 빼앗겨 버린 국가에 대한 기억이, 그리고 전쟁으로 다시 한 번 국가를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사람들에게 각인되었다. 일본제국주의에 대한 분노와 두려움은 북한공산주의에 대한 분노와 두려움으로 바뀌었다.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의 수호자라는 거짓된 이미지로 치장하게 되었다.

편집자의 말

안드레아스 슈펙

한국의 병역거부자들이 처해온 극단적인 어려운 현실은 그동안 그다지 널리 알려지지 못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는 심지어 전쟁저항자인터내셔널(WRI)처럼 국제적으로 병역거부운동을 하는 단체들조차도 한국의 병역거부 현실에 대해서 모르고 있었다.

by 현지
 
한국에서의 병역거부는 아주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여호와의 증인들을 중심으로 50년이 훨씬 넘는 기간동안 병역거부자들이 감옥에 수감되어 있던 시간만 합쳐도 1만 여 시간이 훌쩍 넘는다. 독재정권 하에서 구타, 고문 등을 견디며 누군가는 숨을 거두었고, 누군가는 7년이 넘는 시간을 감옥에서 보내야만 했다. 한국에서 ‘병역거부’가 일반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2001년 초의 일이다. 그 후 사회적으로 많은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키며 한국사회에서의 병역거부 문제는 큰 이슈가 되었다. 물론 처음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비난과 질타로 50년이 넘는 시간동안 겪어왔던 고통보다도 더 큰 심리적 압박감을 느껴야 했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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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레아스 스펙

들어가며

전쟁저항자인터내셔널(War Resisters' International)에서는 지난 2001년부터 세계병역거부자의 날인 5월 15일에 즈음하여 국제적인 활동들을 주관해왔다. 세계병역거부자의 날은 1982년 유럽 병역거부자의 날로부터 시작이 되었으며 세계병역거부자의 날이 공식적으로 기념되기 시작한 것은 1986년부터이다.

매년 5월 15일 즈음에 펼쳐지는 이 행사에 참여하는 세계 각지의 병역거부운동 활동가들은 서로의 경험을 공유하고 다른 지역의 운동으로부터 배울 수 있는 부분을 찾아서 자기 지역 운동으로 가지고 돌아간다. 2002년 행사 때부터는 비폭력 트레이닝과 비폭력 행동이 5월 15일 행사의 주요한 부분으로 자리잡아왔다.

활동들

비폭력 행동을 위한 트레이닝이 세계 병역거부자의 날 행사 기간 중에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2002년 벨기에에서 열린 5월 15일 행사에서였다. 그 당시에 계획된 행동은 5월 15일 당일에 나토(NATO)의 본부사무실을 봉쇄하는 것이었다. 이와 같은 직접 행동의 목표는 행사 시작 이전에 이미 결정이 되어 있었고, 이 행동을 위한 준비는 5월 15일 행사 기간인 일주일 동안에 모두 이루어졌다. 이 때 모인 활동가들의 출신 지역은 벨기에, 영국, 독일, 프랑스, 네덜란드, 스페인, 마케도니아, 크로아티아, 터키 등이었다. 이와 같은 다양한 출신 지역은 곧 서로 다른 경험과 언어를 의미했고 이로 인해 여러 어려움들이 존재했다. 한편, 참여자들은 직접행동을 위한 트레이닝과 준비과정 이외에도 5월 15일 행동에 맞추어 선언문을 작성하기도 하였다.

2003년 이스라엘에서 열린 세계 병역거부자의 날 행사에는 일종의 공개 세미나 비스무레한 것이 추가되었다. 물론 여전히 비폭력 트레이닝과 직접행동을 위해 함께 준비하는 과정은 5월 15일 행사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었다. 이 때 진행된 비폭력 트레이닝 과정에서 참여자들은 비폭력, 힘(권력), 권력 분석을 위한 비폭력 접근법(tool), 비폭력 운동 개발 등에 대해서 배웠다. 그리고 이와 같은 내용들은 5월 15일에 있을 행동을 위한 실습과정에서 적용이 되었다.

이스라엘에서 진행된 행사에서는 직접행동의 목표를 무엇으로 잡을지에 대한 뜨거운 논쟁이 벌어졌다. 행동의 초점을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에 맞출 것인지 아니면 병역거부에 초점을 맞출 것인지 아니면 이스라엘의 군사주의에 초점을 맞출 것인지 하는 논쟁이었다. 결국에는 아래와 같은 여러 중심 이슈들을 동시에 설정하는 것으로 합의가 되었다. 세계 병역거부자의 날과 이에 맞추어 진행되는 국제적인 병역거부 운동을 알리는 것, 이스라엘의 일상적인 문화에서 군대가 지니는 상징성을 일깨우는 것, 군인을 적대적인 존재로 배타화하지 않는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다른 비폭력 행동들을 촉발할 수 있는 행동을 실행하는 것.

2004년에는 칠레에서 5월 15일 행사가 열렸다. 이 때의 행사에서는 스페인어가 주 언어로 사용되었다. 이번에도 역시 행사의 큰 틀은 그 전 해에 열린 행사의 틀과 대체로 비슷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대부분의 참여자가 라틴 아메리카 출신이었다는 점에서 행사의 분위기가 이전과 많이 달랐다. 2004년 행사가 남긴 교훈은 서로의 경험을 공유하는 과정에서 행동을 함께 계획하고 트레이닝을 거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2005년 5월 15일 행사는 그리스에서 열렸고 이에 따라 행사에서 다뤄지는 중심 테마 역시 유럽적 맥락으로 되돌아갔다. 물론 이번에도 비폭력 트레이닝과 공동으로 행동을 준비하는 과정은 전체 행사의 가장 주요한 비중을 차지했다.

2006년 세계 병역거부자의 날 행사는 미국에서 진행이 되었다. 이 때는 직접행동을 준비하는 것보다는 세미나를 통해서 서로의 경험을 공유하는 과정에 행사의 초점이 좀 더 맞추어졌다. 이렇게 된 부분적인 배경에는 5월 15일 행동이 있을 같은 날에 이미 많은 다른 단체들의 행동들이 계획이 되어 있었고 따라서 병역거부자의 날에 초점을 맞춘 행동이 다른 행동들에 묻혀 별로 주목을 받지 못할 것이라는 예상이 있었다.

2007년 콜롬비아에서 열린 5월 15일 행사에는 반(反)군사주의 콘서트, 국제회의 등이 포함이 되었고, 콜롬비아 병역거부자들에 대한 국제적인 연대를 어떻게 형성할 것인지 그리고 메델린에서 5월 15일에 열릴 예정이던 행동을 함께 준비하는 데에 초점이 맞추어졌다.

과제

해마다 열리는 세계 병역거부자의 날 행사와 관련해서 몇 가지 제기되는 고민들이 있다. 재정마련과 관련한 내용은 이 핸드북의 주제와 벗어나는 부분이므로 여기서는 언급을 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재정적 여력이 얼마나 있느냐 하는 것이 5월 15일 행사의 성패를 좌우하는 가장 큰 부분 중의 하나이긴 하지만 말이다.

다른 고민거리들은 다음과 같다.

의사 결정 : 매년 바뀌는 초점 지역과 초점 국가를 어떻게 결정할 것인가? 조직 : 행사 준비과정에서 제기되는 전쟁저항자인터내셔널 사무실과 해당 지역 단체들 사이의 소통문제. 프로그램/트레이닝/행동: 이 활동들의 과정에서 해당 지역 단체와 해외 참여 활동가들의 서로 다른 관심과 욕구를 어떻게 잘 조율할 것인가?

이와 같은 질문들에 대해서 어느 누구도 스스로 적절한 판단을 내리긴 힘들 것이다. 대신에 나는 그 동안 이루어졌던 평가들을 제시하고자 한다.

의사결정

세계 병역거부 회의(International Conscientious Objection Meeting, ICOM)의 활동이 1990년대 말 소멸하면서 세계 병역거부자의 날 행사 준비를 2001년부터 전쟁저항자인터내셔널에서 맡기 시작했다. 하지만 당시에 문제는 그 다음 해인 2002년 5월 15일 행사의 초점지역을 어디에 맞출 것인지 결정할 수 있는 병역거부자 네트워크가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 문제는 지금도 여전히 문제로 남아있다. 초기에는 전쟁저항자인터내셔널 사무실 스텝들과 운영위원들이 5월 15일 행사 지역을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 2002년 이스라엘에서 5월 15일 행사가 끝난 뒤, 그 전 해 5월 15일 행사 참가자들이 다음 해의 초점 지역과 국가를 결정하는 의사결정과정에 이메일 리스트를 통해서 참여하는 방식의 제안이 이루어졌다. 하지만 이 안 은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다.

그 다음으로 제안된 것은 1년에 한번씩 있는 전쟁저항자인터내셔널 평의회(WRI Council meeting)에서 다음 해의 5월 15일 행사 초점 지역을 결정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평의회에는 병역거부 운동을 하는 활동가들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이 제안 역시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다. 현재는 이 결정과정이 전쟁저항자인터내셔널 산하 '살상을 거부할 권리(Right to Refuse to Kill)' 팀 회의에 귀속이 되어있다.

분명한 것은 앞서 서술한 것과 같은 의사결정과정들이 만족스럽지 않다는 점이다. 이는 전쟁저항자인터내셔설 내부적으로 뿐만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아직 진정으로 국제적인 수준의 병역거부운동 네트워크가 확립되지 못했음을 방증한다.

조직

5월 15일 행사와 같은 국제적인 행사를 준비하는 것은 늘 쉽지 않은 과제이다. 2002년의 경우에는 국제적인 참여를 조직하는 것과 관련한 대부분의 업무가 전쟁저항자인터내셔널 사무실로 집중이 되었고 행사 지역인 벨기에의 단체들은 주로 행사와 관련한 실무적인 부분들만을 담당하였다. 그 다음해에는 현지 단체에서 프로그램 준비 등과 같은 좀 더 많은 역할을 담당하였다.

자주 제기되는 큰 문제 중의 하나는 바로 행사 준비에 에너지를 투여하는 과정에서 상호간의 온도차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5월 15일과 같은 행사는 행사를 위한 기금 마련 과정을 포함해서 최소 수개월에서 길게는 1년에 걸친 준비과정이 요구되는데, 종종 해당 지역의 그룹들은 행사 시작하기 단지 몇 주 전 혹은 한 두달 전이 되어서야 비로소 준비를 시작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더욱 근본적인 고민은 특정한 날에 맞추어 진행되는 이 연례 행사에서 '어떻게 하면 국제 참여자들의 욕구와 지역 단체들의 맥락을 잘 결합시켜서 이 행사가 단지 일주일 간의 해외여행만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수 있는 운동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가'이다.

프로그램/트레이닝/행동동

전쟁저항자인터내셔널 주관으로 처음 열린 5월 15일 행사에서는 공식적인 프로그램은 거의 없었고 대신 서로의 경험을 공유하고 트레이닝과 행동을 위한 준비과정이 대부분이었다. 그 다음 해부터는 세미나가 기존의 비폭력 트레이닝에 덧붙여졌는데, 이는 5월 15일 행사를 주관하는 현지 단체들이 이 행사를 직접행동을 위한 트레이닝 뿐만 아니라 좀 더 '대중적인' 성격을 띌 수 있게끔 만들고자 하는 욕구에서 비롯되었다.

그 동안 5월 15일 행사에서는 늘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서로 다른 활동들 사이의 긴장관계가 존재해왔다. 서로의 운동 경험과 정보에 대해 공유하는 것, 대중 세미나, 행동을 위한 트레이닝과 준비. 세미나와 같은 대중을 위한 행사에 좀 더 초점을 맞출 경우에 해외 다른 지역의 사례들을 현지 대중들에게 널리 알릴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이런 경우에 일반 참여자들의 기대와 호기심은 충족될 수 있지만 이미 그 내용을 알고 있는 활동가들의 욕구는 충족되기 어려울 것이다.

하나의 행동을 만들기 위한 트레이닝과 준비과정은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행동을 실질적으로 준비하는 과정에서 집단적으로 여러 활동을 해보는 것은 좋은 경험임에 틀림 없지만, 한편으론 다른 논의들을 위한 시간들을 빼앗기도 한다. 그래서 늘 다음과 같은 질문이 제기되어 왔다. “지금 이 활동을 하는 것이 정말로 우리의 시간을 잘 활용하고 있는 것일까?”

행동 그 자체도 여러 가지 고민거리를 안겨다 준다. 현지의 행사 주최 단체들이 기대하는 것은 무엇인가? 현지 활동가들과 해외 활동가들이 감수해야하는 위험은 무엇인가? 해당 지역의 맥락과 배경은 어떠한가? 서로의 의견을 듣고 특정한 형태의 행동이 초래할 잠재적인 문제들을 이해해 나가면서 최종적인 합의에 이르는 데에는 아주 긴 시간을 필요로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행동을 준비하는 데에 단지 며칠 정도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다. 특히나 행동에 관한 논의를 위한 시간과 더불어 행동과 관련한 실무적인 것(배너처럼 필요한 물품 준비)들을 준비하는 데에 드는 시간을 고려한다면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그다지 여유롭지는 않을 것이다.

결론을 대신하여

지금까지 어떠한 행동이나 행사들도 완벽하게 이루어진 적은 없다. 위에서 언급한 고민들이 완전히 해결된 적은 한번도 없지만 그래도 참여자들과 주최자들은 늘 행사가 끝난 뒤에는 긍정적인 느낌들을 받아왔다.

개인적으로는 병역거부자의 날 행사에서 트레이닝 파트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지난 2년간 비폭력 트레이닝이 주요 아젠다가 되지 못한 점은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다. 하긴 우리가 종종 너무나 많은 것들을 한정된 시간 안에 모두 시도하려고 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동을 위해 계획을 세우고 트레이닝을 진행하는 것이야말로 서로의 정치적인 관점이나 운동의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역할을 담당해왔다고 믿는 바이다.

트레이닝과 상호 경험 공유의 시간을 적절히 잘 조율하는 것에 대한 고민은 여전히 과제로 남아있다. 물론 우리가 다른 지역의 병역거부 운동에 대해서 좀 더 배우고자 하는 욕구가 있는 한에서 말이다.

“양심적 예비군 거부자 처벌 말라, 대체복무제 도입 재확인“

-인권위, 향토예비군법 위헌 여부에 대해 헌재에 의견 제출-

국가인권위원회(위원장 안경환)는 울산지방법원에서 헌법재판소에 위헌 제청한 '향토예비군설치법' 제15조 제8항 사건에 대하여 양심적 병역거부권 인정과 대체복무제도의 도입을 재확인하고 양심적 예비군 거부자를 거듭 처벌하지 말라는 의견을 헌법재판소에 제출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울산지방법원은 '향토예비군설치법' 제15조 제8항 중 일부에 대하여 헌법재판소에 위헌심판 제청하였습니다. 제청내용은 '향토예비군설치법' 제15조 제8항 중 “예비군 훈련을 정당한 사유 없이 받지 아니한 자는 1년 이하의 징역, 200만원 이하의 벌금, 구류 또는 과료에 처한다”는 부분의 위헌여부를 물은 것입니다.

아래 판결문은 헌재가 공개한 판결 요약문입니다. 판결문 전문 보기

판시사항

1. 헌법상 보장되는 양심의 내용
2. 양심의 자유로부터 대체복무를 요구할 권리가 도출되는지 여부(소극)
3. 양심실현의 자유에 대한 침해 여부의 심사에 일반적인 비례의 원칙이 적용되는지 여부(소극)
4. 대체복무제도의 도입을 통하여 병역의무에 대한 예외를 허용하면 국가안보란 공익을 효율적으로 달성할 수 없다고 본 입법자의 판단이 현저히 불합리하거나 명백히 잘못된 것인지 여부(소극)
5. 양심보호조치 등에 관한 입법자에 대한 권고

결정요지
Berlangganan International Conscientious Objection 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