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을 거부할 권리 평화를 선택할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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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상 열

(평화인권연대)

전쟁세거부(War Tax Resistance)와 평화세(Peace Tax)

1846년 미국이 멕시코와 전쟁을 벌이고 있을 당시, 시민불복종 사상으로 유명한 헨리 데이비드 쏘로우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가 그들에게 돈을 대고 있는 이상, 국가는 폭력을 저지르고 무고한 시민들을 피 흘리게 할 것이다. 그러나 시민 수천 명이 이것을 거부한다면, 국가는 더 이상 잔인한 폭력의 도구를 얻지 못할 것이다“

전쟁세 거부는 이처럼 매우 간단한 생각에서부터 출발한다. 전쟁, 군비증강과 같은 국가의 군사 활동에 납세를 통해 재정을 지원하는 행위를 거부하겠다는 것이다. 전쟁저항자연맹(War Resisters League, WRL)은 전쟁세거부의 의의를 설명하면서, 전쟁세납부가 가져오는 파괴적인 결과를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 전쟁을 증가시키며, 이는 기아, 빈곤, 억압, 추방, 생태파괴를 불러온다. △군사주의를 강화하며 이에 따라 폭력, 인종 차별, 성차별, 동성애혐오, 증오, 차별, 빈곤이 확산된다. △인간의 자유를 감소시킨다. △인간이 필요로 하는 자원을 감소시킨다. - 군비지출은 보건의료, 주택, 식량, 고용, 교육, 환경보호 등에 인간의 필요에 들여야 할 우리의 자원 중 많은 부분을 소모시킨다. △국제법을 위반한다. △양심을 침해한다. - 평화와 인권을 바라는 구체적인 인간들의 양심과 신념을 파괴한다.

그러므로 전쟁세거부는 단지 ‘합리적인 납세’를 주장하거나 ‘납세자의 권리를 찾자’는 주장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군사화과정에 적극적으로 저항하자는 반군사주의 운동의 성격을 갖는 것으로 평가될 수 있다. 예컨대, 전쟁세거부가 국방비 납세에 저항하는 운동인 이상, 이 운동은 국방비 납부를 정당화하는 국가(군사)안보론, 군사주의 등에 대해 저항하는 과정을 동반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전쟁과 군사주의 확산이 인간의 자유와 사회적 권리의 제약으로 귀결되는 만큼, 이 운동은 전쟁과 군사주의로 인해 파괴되는 인간의 구체적인 권리를 방어하는 운동과 함께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편, 전쟁세 거부운동은 종종 평화세 제정운동과 짝을 이루어 진행되곤 한다. 여기에서 평화세란 전쟁세를 거부한 사람들의 인권을 보장하기 위해 고안된 제도적 장치이다. 전쟁세가 아닌 평화세에 자신의 세금을 납부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을 위해, 특정한 평화기금을 설치하고 군비납부를 거부한 만큼의 액수를 이 기금을 통해 적립하여 난민지원, 교육, 주택, 아동권의 보호 등 오로지 평화적인 목적으로만 이 기금을 활용하자는 주장인 것이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미국, 영국, 벨기에 등 7개국에서는 오랜 기간의 평화세법안제정운동의 결과로 이 법안이 의회에 상정되어 있다고도 한다. 결국 전쟁세거부는 전쟁을 거부하고 평화를 선택해 사회적 자원을 투자하는 대안시스템의 마련을 촉구하고, 군대와 군비의 완전한 소멸을 주장한다는 측면에서 사회변화를 실천하는 사회 운동적 성격 또한 갖는다고 말할 수 있다.
전쟁세거부에 대한 국제적 인권규정

국제사회에서 전쟁세 거부 혹은 '양심에 따라 전쟁세를 거부할 권리(Conscientious Objection to Military Taxation)'는 인권항목의 하나로서 적극적으로 규정되는 추세에 있다.

보통 전쟁세거부의 기본 동기는 납세를 통해 전비를 지원하고 그것이 끔직한 폭력과 전쟁으로 귀결된다는 사실이 평화를 바라는 자신의 양심과 양립할 수 없다는 상황인식에서 출발한다. 그러므로 전쟁세거부는 양심에 따른 거부권(Conscientious Objection)을 실현하는 한 형태로서 사고될 수 있을 것이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양심에 따른 거부권은 「세계인권선언」「시민적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협약」등에 규정되어 있는 “사상, 양심, 종교의 자유에 대한 권리”에서 직접적으로 도출되는 인간의 기본권이다. 더 나아가 유럽의회와 세계교회협의회는 보다 분명하게 양심에 따른 거부권의 내용을 병역거부뿐만이 아니라 군비에 대한 지원을 거부하는 것에까지 확장시키는 내용의 선언을 발표한 바도 있다. 유럽의회의 시민적 자유위원회는 “납세부분에 대해서도 양심에 따른 거부권이 적용”된다는 보고서를 발간한바 있으며(1993), 세계교회협의회 또한 1990년에 “병역 및 군사적 목적으로 사용되는 납세를 양심에 따라 거부할 권리를 지지”한다는 선언을 발표한바 있다.

여러 국제기구들에서 ‘전쟁세를 거부할 권리’를 인권항목의 하나로 인정하기 시작한 것은 전쟁세거부자와 평화세제정운동가들의 오랜 노력과 투쟁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10여 개국의 전쟁세거부자들과 평화세제정운동가들은 전쟁세거부권을 인권으로 규정하고 대략 80년대부터 국제적인 연대운동을 펼쳐왔다. 그 결과 1994년에는 Conscience and Peace Tax International이라는 국제조직이 결성되기도 하였다. Conscience and Peace Tax International의 창립총회 선언문인 혼다리비아 선언은 전쟁세거부운동의 문제의식을 명쾌하게 보여준다. “군비지출에 협조하지 않을 권리(right of non cooperation with military expenditure)"를 부제로 달고 있는 이 선언문의 내용을 발췌하면 다음과 같다.

“누구도 심오한 양심에 따른 신념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분쟁의 평화로운 해결에 기여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 인간을 살상하는 과정에 능동적으로나 수동적으로 참여하지 않을 권리를 인식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시민들은 군사적 수단이 국제관계의 필수적인 부분이라고 믿도록 교육받아왔다. 그러나 우리는 병역복무․ 납세 혹은 다른 어떤 방법을 통하여 군사 활동을 지원해서는 안 된다 … 우리는 인류와 각국정부들에게 군비지출에 대한 양심에 따른 거부를 존중할 수 있는 법적인 제도를 마련할 것을 촉구한다. 우리의 궁극적인 목적을 모든 군사지출과 군사 활동을 철폐하는 것이다. 우리는 군대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며, 모든 인간의 권리가 존중되는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모든 사람들과 함께 싸워나갈 것이다.”

구미의 경험과 논쟁

전쟁세거부 운동은 역사적으로 매우 깊은 유례를 가지고 있다. 기록에 따르면, 기원전 4000년경 고대 바빌로니아와 2세기경 이집트에서도 전쟁세에 대한 대중적 불만과 집단적인 납세거부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한 12세기 12세기부터 19세기에 이르기까지 미국, 영국, 노르웨이, 네덜란드, 프랑스, 아일랜드, 헝가리, 러시아 등지에서 전쟁세 거부자가 있었다는 기록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최근 구미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세거부운동의 직접적인 뿌리는 2차 세계대전과 베트남전이며, 이를 계기로 전쟁세거부운동이 집단적인 운동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참고자료의 한계 상 여기에서는 미국에서 벌어진 전쟁세거부 운동을 중심으로 이 운동의 경험을 소개하는 것으로 하겠다.

미국에서는 존 바즈라는 여성이 그녀의 수입세 중 60%를 베트남전에 반대한다는 이유로 전쟁세 납부를 거부하면서 본격적으로 전쟁세거부운동이 일어나게 된다. 존 바즈를 포함해 1965년에 일군의 평화주의자들은 “No Tax for War in Vietnam Committee”라는 단체를 조직해 전쟁세 거부를 집단적으로 조직하였으며, 이 운동의 결과 1967년까지 약 500여명의 시민들이 전쟁세 납세거부에 동참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60년대 반전운동의 성장과 함께 전쟁세거부운동도 발전하여, 수백 명에 이르던 전쟁세거부자들이 수만 명으로 확대되기도 하였다.

전쟁세거부운동의 대중화를 위해 1966년경에는 전화세 중 10%의 납세를 거부하자는 운동이 칼 마이어에 의해 시작되었으며, 전쟁저항자연맹은 이 운동을 60년대 말까지 꾸준히 진행해 전국적인 운동으로 발전시키기도 하였다. 비슷한 시기에 켄 크누드손은 전쟁세거부의 새로운 아이디어로 W-4 resistance를 제안하였으며, 이 아이디어에 바탕 한 운동 또한 종교단체, 평화주의자들, 전쟁거부자연맹 등 여러 조직들에 의해 60년대 말까지 진행되기도 하였다. W-4 resistance는 원천징수에 저항하는 운동으로서, 구직 시 적어내는 W-4 form에 원천징수 ‘면제’를 선언하거나, 원천징수를 피할 수 있도록 부양가족 등 필요조건을 W-4 form에 써내는 운동이었다고 한다. 이에 대해 정부는 납세기피혐의로 관련자를 고소하였고, 6명가량이 수감되기도 하였다.

1970년에 이르자 미국의 전쟁세 거부자들은 대략 2만 명가량에 육박하게 되며, 전화세거부자들 또한 수십만에 이르게 되었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주목할만한 점은 많은 전쟁세거부운동 그룹들이 지방 곳곳에서 펼친 ‘민중생활기금’운동이다. 당시 전쟁세거부자들은 납세를 거부한 만큼의 돈을 ‘민중생활기금’으로 적립하여 여러 가지 지역공동체프로그램에 지원하였다고 한다. 72년에는 이러한 아이디어를 발전시켜, 평화세 법안이 의회에 상정되기도 하였으며, 현재에까지 평화세 제정운동이 펼쳐지고 있다. 평화세 법안은 양심에 따라 전쟁세를 거부하는 사람들의 인권을 제도화하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졌으며, 납세를 거부한 만큼의 액수를 평화기금으로 조성해 평화적인 용도에 사용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요컨대, 전쟁세거부 운동은 반전운동의 굴곡과 함께 발전하기도 하고 쇠퇴하기도 하는 경향을 보인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서 보아야 할 것은 민중의 일상과 전쟁, 폭력, 군비증강 따위의 것들을 연결시키면서 일상적이며 대중적인 반전운동형태를 개발하기 위해 노력해왔다는 점일 것이다. 한편, 전쟁세거부운동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형성되는 여러 논쟁들의 의미와 그 사회적 효과에 대해서도 주목해야 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자면 이런 것들이다. 전쟁세거부를 납세의무를 파괴하는 범죄로 규정하는 입장과 양심의 실현 혹은 저항권의 발휘로서 납세거부를 정당화하는 입장의 충돌, 안보의 집단성 혹은 국가(군사)안보를 강조하는 입장과 안보의 개인성, 인간안보를 강조하는 입장의 충돌,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에 위배되는 행동으로 전쟁세거부를 바라보는 입장과 적극적인 불복종 직접행동을 통한 민주주의의 실현을 바라보는 입장의 대립 등… 요컨대, 이와 같은 사회적 논쟁을 통해 인권담론의 시야와 범위를 확장시킬 수 있는 계기를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전쟁이 아닌 평화를 선택할 권리

진지한 마음을 가진 평화주의자들은 게으른 꿈과 싸우거나 단지 평화에 대해 이야기하기보다는 실제로 무엇인가를 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이라크 추가 파병 문제로 온 나라가 떠들썩한 오늘 우리의 상황에서, 전쟁을 반대하고 폭력에 저항하는 일상적인 실천은 여전한 고민거리일 수밖에 없다. 특히 이라크라는 해외의 전장이 우리의 일상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문제제기해야 한다. 이러한 점에서 전쟁세 거부운동은 좋은 선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부당한 이라크 점령에 협조하는 국가에 항의하고, 전쟁이 아닐 평화를 선택할 권리가 우리에게 있다는 점을 주장함으로써, 은은하지만 끈질긴 평화운동을 만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부러진 총 59호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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