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역거부 운동은 나를 변화시켰다”

스페인 도노시아에서 있었던 최정민의 발표문

(편집자 발췌 및 재편집)

몇 년 전에 한국에 사는 미국인 친구가 한 번은 저에게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미국에 사는 자신의 가족들이 위험하니 빨리 한국에서 빠져나오라고 종종 얘기하곤 한다는 것입니다. 정작 한국에 사는 저는 별로 그런 위험을 느끼지 못하는 데 한국 바깥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한반도가 군사적 대치로 매우 위험한 곳이라 비춰질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58년 전 한국은 전쟁을 겪었습니다. 그 전쟁이 얼마나 참혹한 전쟁이었는지는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한반도는 전쟁 이후 남과 북으로 분단되었고 오랜 세월 교류가 차단된 채 서로가 서로를 미워하며 살았습니다. 한국 전쟁 이후 수십 년 동안, 그리고 여전히 지금까지도 한국은 레드 콤플렉스, 전쟁의 공포, 국가와 우익 보수 세력에 의한 잔혹한 학살과 탄압의 공포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지금은 없어진 모습이지만 제 세대만 해도 국군장병에게 편지를 쓰는 것이 초등학교 교육과정의 일부였습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국군장병에게 친애하는 국군장병 아저씨 저와 제 가족을 지켜주시느라 고생이 많으십니다. 고맙습니다. 이런 편지를 쓰고 자란 어린이가 자라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살게 될지를. 게다가 의무적으로 반공만화도 봐야만 했습니다. 제가 봤던 반공만화에서 북한 사람들은 모두 돼지의 손발과 얼굴을 하고 있었습니다. 언젠가 유럽에서 북한 살마을 만났는데 얼굴과 손발이 돼지가 아니라서 무척 당황했었던 기억이 납니다.

저에게 병역거부 운동은 무엇보다 군사화 된 한국 사회에 평화에 대한 감성적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잃어버린 인간성을 상기시켜준다는 점에서 소중합니다. 병역거부자들의 등장과 반군사주의 운동으로 사람들은 군사훈련에서 사람모양의 과녁을 향해 사격 훈련을 할 때의 섬뜩했던 감정을 다시 떠올렸고 입대를 당연시 여겼던 문화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병역거부운동은 한국사회에 어쩌면 우리가 군사주의를 지탱하고 기둥일 수 있고 주체적이고 비폭력적으로 삶을 만들어가야 한다는 것을 한국사회에 최초로 문제제기를 던지는 운동이었습니다. 그 이전까지 한국 사회에서 군대는 남자라면 당연히 가야하는 자연스러운 존재였습니다.

한국에서 병역거부 운동은 2000년 말 시작되었습니다. 대부분 한국 남성이 군대를 경험하고 여호와의 증인들이 집총을 거부하는 모습을 봤을 텐데도 그 이전에는 이 문제가 사회적 이슈화가 되지 않았습니다. 제가 이 운동을 시작하면서 몇몇 진보적인 친구들에게 군대에서 집총하지 못하겠다고 하는 사람들을 본 적 없느냐고 물었더니 당연히 본 적 있다고 하면서 당시에는 그 사람들이 굉장히 이상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물론 특정 종교에 대한 반감이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했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제가 대학에 다닐 때는 학생운동이 광장히 격렬했던 시기입니다. 여러 대학생들이 분신하고 길거리에서 화염병을 던지며 군부독재정권 타도를 외쳤습니다. 당시 학생운동가들은 혁명의 시기 군대의 역할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했었고 군대를 가는 것, 군대에 가서 병사들을 의식화, 조직화 시키는 것을 중요한 운동의 목표로 삼았습니다. 학생운동에서의 이런 군사적인 운동방식은 지금은 많이 없어지긴 했어도 다른 모습으로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통일 이후 우리 민족끼리의 강한 군대가 필요하다고 본다던가 여전히 유약한 투쟁의 수단으로 병역거부를 사고하는 것은 이러한 한국 사회 군사주의의 단면을 잘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 문제가 사회적으로 큰 관심을 끌자 학생운동을 경험했던 몇몇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병역거부를 고민하는 사람들이 생겨났습니다. 2001년 12월 평화운동가이자 불교신자인 오태양씨의 병역거부는 평화에 관심 있는 다른 젊은이들에게 자극이 되었고 이후 꾸준히 병역거부를 선언하는 사람들이 등장했습니다.

그즈음부터 체계적인 상담활동의 필요성이 우리 내부에서 제기되었고 우리는 병역거부를 고민하는 사람들을 위한 가이드북을 제작해서배포하고 온라인을 통해서도 열람할 수 있게 하였습니다. 가이드북에는 병역거부를 결심하기 전에 반드시 고민해야 할 부분들, 재판과정, 감옥생활, 후원회의 역할, 관련 법조문들이 담겨져 있습니다. 이렇게 기초적인 정보들을 수집한 사람들은 대부분 우리에게 연락을 해오고 여러 가지 덧붙여지는 조언을 받습니다. 우리는 처음에 그들을 만날 때는 약간을 겁을 주면서 다시 생각해보라고 조언을 합니다. 아직까지 한국사회에서 병역을 거부한다는 것은 적어도 부모세대에게 있어서는 굉장히 수치스러운 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에 가족과의 관계에서 감당하기 어려운 갈등이 생기기도 하고 출소 이후에도 직업적인 선택에서도 많은 제약을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 한국 감옥의 현실에 비춰봤을 때 1년 6개월이라는 수감기간은 너무나도 가혹하고 겨디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그런 조심스런 접근에도 불구하고 벌써 여러 명의 병역거부자들이 수감되어 조사를 받는 도중 병역거부를 포기하고 입대의사를 밝히기도 하였습니다. 이런 사건은 당사자나 우리들 모두에게 상처로 남아 있습니다.

2004년 여름 대법원과 헌법재판소가 차례로 병역거부에 대해 유죄를 선고하고 현행 병역법이 헌법에 합치된다는 결론을 내린 후 그 땎K지 재판이 미뤄졌던 병역거부자들이 한꺼번에 감옥에 가게 되었습니다. 돌이켜보면 2004년 가을, 겨울은 저에게는 친구들을 줄줄이 감옥에 가야만 했던 아주 슬프고 쓸쓸했던 계절로 기억이 됩니다. 이후 2004년 말부터는 우리 운도에서 감옥에 간 병역거부자들에 대한 지원활동이 가장 중요한 활동으로 자리 잡게 됩니다. 우리는 각 병역거부자들의 후원회와 긴밀한 연계를 갖고 각종 조언과 지원을 하고 격주로 수감자들에게 보내는 소식지를 만들어 다른 병역거부자들의 소식, 평화운동 소식 등을 알리는 활동을 하였습니다.

감옥 지원이 주요한 활동의 분야로 떠오르면서 우리 운동 내부에서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기게 됩니다. 감옥에 있는 병역거부자들을 지원하는 역할을 주로 여성들이 담당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대분분의 병역거부자들이 감옥에 가 있고 주로 여성활동가들이 남았다는 것도 하나의 원인이지만 우리 내부에서도 이러한 성적 역할분담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있었던 것 또한 사실입니다. 그것은 아직까지도 해결되지 못하고 우리 운동을 괴롭히는 부분입니다.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 이전, 병역거부 운동은 대체복무제도의 도입에 초점이 맞춰졌던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인권적 접근은 매우 한계적이었고 다른 많은 문제를 낳았습니다. 병역거부의 논리는 일방적인 국가폭력의 희생자와 다르고 어느 정도 감옥행을 자진한 것인데도 대중들은 병역거부자들에게서 불쌍한 피해자의 이미지만을 보길 바랬습니다. 또 다른 한 편에서는 같은 논리지만 정반대로 국가주의에 정면으로 맞선 위대한 영웅으로 이들을 보았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그토록 바꿔내고 싶었던 한국 사회의 군사주의를 어떤 측면에서는 동조하거나 강화하는 것이었습니다. 또 이런 상황에서는 병역거부자가 아닌 활동가들, 특히 여성들은 굉장히 주변적인 위치로 몰렸습니다. 저의 경우 병역거부 운동을 하던 초창기에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신문에 글을 쓰거나 토론회에 참석하는 것을 제한받기도 하였습니다. 저의 주장이 매우 일리가 있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여성이 군대에 대해서 발언하는 것을 매우 싫어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반응을 역설적이게도 한국 사회 군사주의의 마지막 보루가 어디인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2008년 보수 신자유주의 정권이라 할 수 있는 이명박의 집권 후 그 이전 정부에서 약속했던 대체복무제 도입이 원점으로 돌아갔습니다. 이명박 정부의 정책들은 우리 사회의 발전을 10년 전으로 돌려놓았다고 평가될 정도로 심각한 것입니다. 정치권에 대한 지독한 불신과 돈에 대한 욕망으로 이명박을 선택했던 시민들은 막상 미국산 소고기 수입에서 보여 지는 것처럼 이명박 정부의 공약들이 시민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직접 느끼게 되었고 거리로 쏟아져 나왔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그렇게 사람이 많이 모인 것은 태어나서 처음 보았습니다. 미국산 소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한국의 촛불시위가 외국에는 어떻게 보도가 되었는지 잘 모르겠지만 촛불시위는 여러 가지 면에서 시민들에게 민주주의의 산 교육장으로서의 역할을 했습니다. 다양한 그룹들, 주장들이 공존하는 촛불시위 현장에서 우리는 주로 비폭력직접행동을 증진시키고 병역거부를 선언하는 전·의견들을 지원하는 역할을 하기로 하였습니다.

전·의경 제도는 한국 군대의 불합리한 시스템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인데 군에 입대한 사람들을 무작위로 선발하거나 군 입대 대신 지원하게 하여 시위진압 등의 경찰보조 업무를 수행하도록 하는 제도입니다. 우리는 촛불시위에서 시위대들에게는 경찰의 폭력에 폭력으로 대응하는 대신 어떻게 내 몸을 보호하고 경찰들과 소통할지에 대해, 전·의경들에게는 부당한 명령에 복종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는 것에 대해 팜플렛을 만들어 전·의경들과 시민들에게 나눠주었습니다. 그러던 7월 말 이길준이라는 전경이 휴가 중 우리에게 연락을 했고 부대로 복귀하고 싶지 않다는 의사를 밝혔습니다. 촛불시위의 크기만큼 이길준의 병역거부는 한국 사회에 굉장한 반향을 일으켰고 병역거부를 반대하던 많은 시민들이 이를 계기로 병역거부 운동에 대해 매우 우호적인 입장으로 돌아서게 되었습니다.

저에게 병역거부 운동을 했던 8년의 시간은 저 스스로가 변화했던 시간들이기도 합니다. 대항폭력이 정당화되었던 시기에 학생운동을 경험했었기 때문에 초창기 비폭력이란 단어를 사용하는 것도 매우 낯설었습니다. 하지만 8년이 지난 지금, 저는 비폭력의 힘을 믿게 되었고 그것은 사회의 제도나 시스템을 변화시키는 것을 넘어 내 스스로가 변화하는 것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석유를 사용하는 교통수단 대신 자전거를 타게 되었고 채식을 실천하게 되었습니다. 저도 변했으니까 다른 사람들도 분명히 변할 수 있고 변할 거라고 믿습니다. 이런 경험교류의 자리는 저를 깨닫게 하고 우리 운동을 성찰하게 하며 많은 영감을 줍니다. 여러분의 활동과 얘기에서 제가 많은 영감을 받았듯이 저의 경험도 부디 여러분께 그런 의미로 다가갔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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