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머와 비폭력 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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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jken Sorensen

우리가 비폭력 행동을 취하는 대상들은 대개 심각하고 진지한 문제들일 때가 많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유머와 비폭력 행동을 결부시켜 생각하는 것은 뭔가 어색해 보이기에 우리의 고려대상에서 제외되곤 한다. 하지만 유머와 진지함은 겉보기와는 달리 생각보다 훨씬 더 서로 연관이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대부분의 유머는 뭔가 모순된 상황이나 부조리한 상황에서 그 힘을 발휘한다. 비폭력 행동 역시 지금의 부조리한 세상과 우리가 원하는 세상사이의 괴리를 드러낼 때 큰 힘을 발휘하곤 한다. 유머는 우리가 알고 있는 세상을 뒤집어 볼 수 있도록 도와주며 또한 우리 삶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논리와 이성으로부터 자유롭게 만들어주기도 한다.

어떻게 시작할 것인가?

만약 유머감각이 당신에게 쉽게 생기지 않는다 할지라도 좌절할 필요는 없다. 유머감각은 학습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당신의 상대집단을 잘 지켜보아라. 그들이 말하는 것과 그들이 행하는 것 사이에 괴리를 발견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센스있는 농담을 위한 좋은 기초가 될 것이다. 상대 집단이 말하는 것과 실제로 보여주는 것 사이의 모순을 관심있게 지켜볼 수록 유머는 더 잘 작동할 것이다. 언제나 그렇듯 독재자들은 자신들이 '공익'을 위하고 있다고 말하지만, 이와 같은 그들의 말들은 그들이 실제로 보여주는 모습과는 반대될 때가 많다.

유머를 지혜롭게 활용하는 법

  • 과도한 유머는 자제하자. 유머는 숙고를 거친 후에 던져져야 한다. 진지한 메세지가 담긴 유머는 최고의 효과를 발휘할 것이다.
  • 조롱하고자 하는 대상은 신중하게 선택하도록 하자.

예컨대, 지금 행동을 통해서 특정한 주장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려고 준비하는 중이라고 가정해보자. 유머의 소재를 상대방의 복장이나 말투, 성별에서 찾는 것은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다. 왜냐하면 이러한 소재들은 다른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모으기 보다는 오히려 전달하고자 했던 원래의 메세지의 위력을 반감시키기 때문이다. 우리의 유머가 원래 전달하고자 했던 주장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이자. 이 글의 마지막에는 유머가 특정 행동의 주장과 목적에 잘 부합했던 두 가지 사례들이 제시될 것이다.

유머를 활용하는 이유

우리의 행동들에서 유머는 약방의 감초처럼 다양하게 활용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유머는 행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할 것이다. 유머는 만병통치약까지는 아니더라도 활동가들의 진이 빠지지 않도록 도와준다.

또한 유머는 언론이나 잠재적인 지지자 그리고 현장에서 지켜보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모을 수 있는 좋은 수단이기도 하다. 기자들이 우리의 취재요청서를 받아들었을 때 현장에서 좋은 이미지와 사건이 될만한 것들을 건질 수 있겠다 싶으면 우리를 찾아올 것이다.

만약 우리가 지금의 작은 운동을 좀 더 확대시키고자 할 때, 유머는 이 운동에 직접 참여하고 있지 않는 잠재적인 지지자들에게 우리가 지금 심각한 주제로 싸우고 있지만 우리의 삶을 즐기며 즐겁게 활동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다.

유머의 힘

유머는 상대집단과 마주했을 때에도 큰 힘을 발휘한다. 상호 대치 속에 형성된 팽팽한 긴장의 끈을 가볍게 비틀어주는 행동들은 상대집단과의 관계나 진지하기만 하던 논리 싸움을 한층 부드럽게 만들어준다. 유머는 그들에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하나의 '딜레마'적인 상황을 안겨다주는데, 즉 이제 그들이 어떤 행동을 취하더라도 그들이 져버리게 되는 상황에 처했으며 심지어 그들을 지지하는 사람들이나 상황을 지켜보는 구경꾼들도 그들이 수세에 빠져있다고 생각하게 만든다. 하지만 상대방 중 누군가를 당혹스럽게 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거친 반응에 대해서는 미리 잘 준비를 해야한다. 상대방으로 하여금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하도록 만들었을 때, 이 때 발생할 그들의 좌절감은 오히려 폭력적인 대응을 유발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유머가 힘을 발휘한 행동의 사례들

아래에서 보여 줄 사례들은 앞서 기술한 논점들을 잘 반영하고 있다. 하지만 이 사례들을 다른 곳에서 다시 그대로 시도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을 수 있다. 아래의 사례들이 유머가 힘들 발휘한 좋은 사례들이긴 하지만 다른 곳에서는 맥락과 상황이 이와는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1983년 노르웨이에서는 여러 명의 완전거부자들이 주축이 되어 '징병제 반대 운동(KMV)'이라는 그룹을 만들고
병역과 대체복무 모두를 거부한 일이 있었다. 그들은 당시 여론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면서 완전거부자들에게 16개월 감옥행을 기계적으로 선고하는 법을 바꾸고자 했다. 한편, 당시 노르웨이 정부는 '감옥'이라는 표현 대신 완전거부자들이 '행형기관에서 감독 및 관리를 받으며 업무를 수행'하게 될 것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었다. 노르웨이서는 정치범을 만들지 않으려고 했기 때문에 정치범에 대한 재판이나 수감, 처벌이 공식적으로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완전거부자들의 경우에는 법원에 가서 완전거부자라고 판정을 받고 일률적으로 16개월 형을 선고받고 있었다. 심지어 때로는 해당 검사가 재판정에 출석하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완전거부자들에 대한 재판결과는 암묵적으로 늘 정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징병제 반대 운동' 그룹에서는 다음과 같은 행동으로 저항을 했다.

한 명의 활동가가 검사 복장을 하고 실제 재판에 참석해 검사의 노릇을 그대로 수행했던 것이다! 검사로 위장한 그 활동가는 재판정에서 피고의 직업(당시 재판을 받던 완전거부자의 직업은 변호사였다)을 고려했을 때 16개월이 아닌 그 이상의 형을 선고해야 한다고 주장을 하였지만, 그 자리에 있던 어느 누구도 이 검사의 '오버 액션'을 눈치채지 못했다. 일주일이 지난 후, '징병제 반대 운동'그룹은 몰래 촬영한 이 재판정의 모습을 언론에 공개했고 이는 대부분의 노르웨이 시민들의 실소를 유발하였다.

위와 같은 사례는 문제제기 하고자 하는 상황을 비꼬아 보는 것이 가지는 파급력을 잘 보여준다. 당시 재판을 받던 한 완전거부자의 친구가 검사로 위장을 해서 더 가혹한 형벌을 줄 것을 주장했던 이와 같은 패러디가 완전거부자에 대한 진지한 고민없이 기계적인 처벌만을 일삼던 사법부를 제대로 조롱한 셈이다. 이 사건이 벌어진 후 많은 언론들과 '평범한' 사람들이 이 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였다. 또한 이 패러디는 노르웨이 정부가 대외적으로 말하는 것과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일 사이의 모순을 만천하에 폭로하는 결과를 낳았다. 당시 정치인들은 노르웨이가 민주주의 국가이며 따라서 정치적인 양심수들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지만 실제로는 자신의 신념 때문에 감옥에 가는 사람들이 존재했던 것이다. 그리고 정부는 이와 같이 감옥에 보내지는 양심수들을 '수감자'가 아니라 '행형서비스에 종사하는 사람'이라고 부르는 기만적인 태도를 보여주고 있었다. '징병제 반대 운동' 그룹은 유머라는 수단을 통해 정부 스스로가 만들어낸 논리로 점철된 그들의 기만을 조롱하였고, 사람들은 이를 계기로 정부가 주장하는 논리의 앞뒤가 안 맞다는 것을 자각하게 되었다.

여기서 다시 한번 강조하자면, 이 사례는 특정한 맥락 속에서 유효할 수 있었다는 점을 주지할 필요가 있다. 검사로 위장을 하는 것과 같은 행동을 다른 상황, 맥락에서 그대로 흉내냈다간 큰 처벌을 받을 수도 있다.

민주주의 사회였던 노르웨이의 사례에서 논의를 옮겨서 이번에는 독재자 슬로보단 밀로세비치가 아직 정권을 잡고 있던 세르비아에서 2000년에 있었던 사례를 들어보겠다. 한번은 밀로세비치가 농업을 살린다는 명분으로 전국에 있는 모든 가게와 공공장소에 모금함을 설치하고 사람들에게는 1 디나르(세르비아 화폐단위)씩을 기부해줄 것을 명한 적이 있다. 이에 대해 청년 그룹 '오트포(Otpot)'에서는 “'Smenu'를 위한 한푼”이라고 쓰여진 자신들만의 모금함을 만들어서 똑같이 설치를 했다. 세르비아 단어인 'Smenu'는 변화, 사임, 해고, 연금 혹은 숙청 등 다양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오트포' 는 자신들이 만든 모금함 옆에 밀로세비치 사진이 붙여진 통을 하나씩 메달아 놓고 사람들이 모금함에 돈을 넣으면 옆에 메달린 통을 한번씩 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였다. 이와 같은 캠페인은 세르비아 곳곳에서 여러 번씩 반복되었는데, 한번은 자신들의 모금함에 문구를 써놓길 만약 밀로세비치의 정책 때문에 한푼도 못가진 사람들은 모금함 옆에 있는 통을 두번씩 치도록 하였다. 경찰이 이 통을 압수했을 때, '오트포'는 바로 보도자료를 내어서 경찰이 자신들의 통을 압수했으며 이로써 자신들의 모금이 큰 성공을 거두게 되었다고 밝혔다. 즉, '오트포' 자신들이 밀로세비치의 은퇴를 위한 충분한 돈을 모금했으며, 경찰은 그 돈을 밀로세비치에게 전달할 것이라는 것이다.

이와 같은 상황은 바로 글 초반부에 언급했던 '딜레마'의 상황이다. 왜냐하면 이제 밀로세비치와 경찰은 어떠한 행동도 취하기가 어렵게 되었기 때문이다. 경찰이 만약 그 통을 압수하지 않고 다시 돌려준다면 자신들의 체면을 잃게 되는 셈이고, 그게 아니라 다른 어떤 조치를 취한다 하더라고 경찰 집단은 밀로세비치의 은퇴를 위해 모금된 돈을 직접 전달한다는 조롱을 받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정권이 어떤 조치를 취하더라도 이 게임에 한정해서는 그들이 진 셈이다.

  • 아래의 코벤트리 대학 평화학 센터(the Centre for Peace and Reconciliation Studies) 웹사이트에 가면 유머와 비폭력의 관계에 대한 마이켄의 논문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the website of the Centre for Peace and Reconciliation Studies, Coventry University